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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한국영상미디어협회의 학술지 『예술과 미디어』가 창간되었을 때부터 중요한 지향점 중 하나는, 가능한 한 분과적 구분을 없애고 융합시킴으로써 당대의 새로운 인문학적 흐름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예술과 미디어』는 미술사 이론, 미학이론, 미디어이론, 제작이론 등과 같은 분과적 경계를 넘어가, 오늘날 인문학 학술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접근을 반영하겠다는 의도이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이 없을 수 없다. 멀게는 60년대 프랑스, 가까이는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에서 대세로 나타난 이러한 흐름은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의 오랜 학문적 계보를 가진 이론이나 개념이 왜곡되어 다른 분야에 거칠게 응용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학제간 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성과는, 문화와 현실 간에 어떤 분명한 이론적, 실천적인 장벽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수긍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예술이론, 문화이론, 인문학, 정치학, 심리학 등은 상호교차 가능하며, 예술이론은 곧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정치이론이기도 하다는 점이 보편적으로 수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과 미디어』는 성과의 미진함과 결여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큰 흐름 속에 놓이는 것을 목표로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 영화,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분과가 서로 다른 연구자들의 상호작용이 부각되고, 한 분야의 이론적 성과가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새로이 목격하고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장이 되어 왔다. 이번 15권 제 4호에서도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8편의 논문이 수록되었지만, 각각의 학문적 방법론은 서로 상호교환 가능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손국환의 「모션그래픽의 전개와 확장」은 근대 미술과 디자인,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 모션그래픽의 시원 및 전개과정을 살펴 본 논문이다. 이를 통해 새롭게 진화한 모션그래픽의 의미와 확장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양성원의 「이미지 합성에 의한 점묘 표현-연구자의 작품을 중심으로」는 본질적인 조형언어의 기본인 '점(點)'에 주목하고, 점묘법을 응용한 필자의 작품을 현대미술의 이론을 빌어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점을 미적인 조형언어를 넘어 심리학적인 내면세계 표현으로 제시한다.
김효숙, 김현석의 「비디오 아트에서 시간과 기억 이미지」는 비디오 아트에서 변형되는 시간개념을 앙리 베르그손의 지속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특히 프랑스 비디오작가인 로베르 카엥(Robert Cahen)과 미국의 작가 제레미 블레이크(Jeremy Blake)의 디지털 비디오를 통해 기억과 시간에 관한 개념을 상술한다.
김승호의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의 가치와 미학적 평가기준」은 현대미술문맥에서 드로잉의 가치평가 맥락을 양식사로서의 미술의 역사, 아서 단토와 한스 벨팅 같은 예술의 종말론,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예술에서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성찰하고 있다.
김도연, 김홍중의 「중국 현대미술 작품에서 문화 유물의 재탄생 - 아이웨이웨이와 송동의 작품을 중심으로」는 송동과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서 중국의 문화적 유물이 레디메이드로 활용되고, 이것이 서구미술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면서 중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참조로 작동하는가를 분석한다.
양세혁의 「은유와 모순의 의미작용에 의한 캐릭터 아이러니의 구조 - <쿵푸팬더>, <업>, <겨울왕국>을 중심으로」는 아이러니가 캐릭터와 플롯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의 작품을 선택하여 아이러니적 캐릭터의 의미론적 구조를 분석한다.
현승훈의 「실기 중심 이러닝 콘텐츠 학습 만족도 분석을 위한 수용자의 주관적 인식유형 연구-영상제작 실기수업을 중심으로」는 이러닝 콘텐츠의 학습만족도 분석을 시도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학습자의 주관성이 실기분야의 이러닝 교육체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김진엽의 「미술에서의 저작권 문제-미술 저작권 적용을 중심으로」는 미술 분야의 저작권이 현대미술의 장르 융합과 해체의 상황에 따라 타 분야저작물과의 중복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특히 디자인이나 사진, 영상 등 매체의 확산과 문화산업의 주요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술의 경우는 저작권 문제에 있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작권법적 현황을 논하고 있다.
학문은 일면 고독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폐쇄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학술지를 통해 관심 있는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접할 때 학문은 가장 생동감 넘치는 대화의 장이 된다. 특히 오늘날처럼 경영, 마케팅, 수익률, 관객 수 같은 것에 문화적 가치기준이 함몰되어 있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학술연구가 단지 동떨어진 원론이 아니라, 가치창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본 호를 위해 고독한 시간을 투자한 연구자들이 이제 즐거운 학문적 대화의 시간을 갖고 그간의 연구를 세상에 인정받는 보상의 시간이 되었음이 기쁘게 느껴진다.
김원방 (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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