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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예술과 미디어』 18권 2호에 게재된 9개의 논문은 미학, 미술사. 미디어아트, 조각에서부터 공공 미술, 미술교육 부분까지 광범한 분야를 다룬다. 다양한 주제이지만 현시대의 관심사와 시대적인 맥락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술은 사회나 정치 문화 및 과학 기술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고동연의 「초등학생을 위한 비평적 미디어 리터러시와 미술관 미디어아트 교육프로그램-백남준아트센터 사례를 중심으로」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16년부터 3년간 행해진 교육프로그램 <사물-놀이: 사물 해킹>, <사물과의 대화>, <모두와 그리는 마을>을 ‘비평적 미디어 리터러시’의 측면에서 분석해 본 것으로 학생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를 비평적이고 분석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 방식이 그간 미디어아트 교육과정에서 간과된 인문과학적, 사회과학적인 감상 해석, 비평 과정을 거치며 다른 학문과 교류하는 성과를 낳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평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접근방식을 이용하여 기존의 단순한 체험이나 실습 위주의 미술관 미디어아트 교육프로그램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마련해 보고자 시도한 점이 돋보인다. 김미진, 왕연주의 「문화도시를 위한 사회참여 공공 미술-서울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의 패러독스: 포용」은 그동안 활발히 전개되었던 사회참여 공공 미술에서의 패러독스를 서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상황들을 제시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 방안에 대한 제안을 한 논문이다. 성과 위주의 사회참여 공공미술이 실질적인 주민의 삶과 예술적 가치에는 의미 없는 것이 되기도 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포용적 관점으로 정책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의 사회적 영향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모든 주체가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합의를 이루는 수정화 기간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전형적인 수행방식을 넘어서 시민의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고 다양성의 관점을 포용하는 섬세한 기획과 진행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민지의 「미디어아트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초월성-빌 비올라의 <순교자들-대지, 공기, 불과 물(Martyrs-Earth, Air, Fire and Water)>(2014)을 중심으로」는 비올라(Bill Viola)가 2014년 런던에 설치한 <순교자들-대지, 공기, 불과 물>에 초점을 맞추어 미디어아트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류학적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대성당 중앙제단에 플라즈마 스크린 4개로 설치된 <순교자들>은 느린 화면에서 보여주는 신체적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순교의 예술적 현시가 다양하다는 것을 각인시키며 하나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실존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수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김성하의 「과타리의 분열분석을 통해 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얼굴성 개념에 대한 연구」는 과타리(Félix Guattari) 실천철학의 방법론인 ‘분열분석(schizo-analyse)’을 통해 구체적인 예술작품, 프루스트(Marcel Proust)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1954)의 ‘얼굴성(visagéïté)’개념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는 그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과타리의 철학적, 미학적 논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확장하고 과타리 실천철학의 방법론인 분열분석을 예술작품에 적용해 그 실천 가능성을 증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 사안들에 대해 분열분석적 방법론을 적용하고 활성화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정현의 「발터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전략과 예술적 각성에 대하여」에서 주류의 역사에 포섭되지 못한 시각을 다시 현재에 불러 세우는 작업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예술의 또 다른 실천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제시한 변증법적 이미지의 역량이자 각성의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벤야민의 사유를 실천한 작가로 말레비치와 존 고트를 들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만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역사의 조작 가능성과 기억의 편향성에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은폐된 진실의 역사를 다시 각성시킨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에게 막간의 시간은 돌이켜 생각할 기회와 역사적 기록에 의문을 던지고 차용과 패러디 방식에 함몰된 무의미한 지속성으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역사를 준비할 수 있게 있게 해 줌을 시사하고 있다. 목정원의 「재현 불가능한 것을 우회하는 재현들-리오타르와 랑시에르를 넘어서」는 재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리오타르와 랑시에르의 상이한 두 입장을 서술하고,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는 ‘우회하는 재현’의 장치를 제안하고 있다. 리오타르는 모든 의미화를 거부하고 형식적인 실험에 몰두함으로써 단지 ‘재현 불가능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시했던 당대의 예술을 옹호하며 재현 불가능한 것은 영원한 심연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랑시에르는 새로운 ‘감성의 분할’을 통해 배제된 것들을 복권하는 재현의 끝없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두 철학자가 보여주는 불가능성과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철학적 고민과 또 어떤 예술적 진통을 가능케 할지를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현주의 「아도르노의 기술 개념에서 본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기술 개념을 통해 기술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예술의 미적 가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알고리즘으로 자동화되어가는 현대 사회를 분석한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저서 ‘자동화 사회’에서 다루는 물화된 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을 죽음의 파르마콘으로 바라보고, 이것의 해독제로서 아도르노의 예술적 기술을 산업적 기술에 대항하는 치유의 파르마콘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도르노에게 있어 미적 가상은 바로 사회에 동일화되지 않는 비동일적인 것으로서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예술적 이미지들은 이 시대의 ‘정신’을 매개함으로써 미적 가상을 구제할 힘을 지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봉욱의 「낯섦을 통한 탈식민주의의 되받아 쓰기 - 로말드 하주메(Romuald Hazoumé)의 작품을 중심으로」는 식민주의 담론에 대해 저항하고 전복하기 위해 탈식민주의를 위한 예술적 가능성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예술가 로말드 하주메의 저항적 예술 작품들의 고찰을 통해 ‘되받아 쓰기(writing-back)’가 지배로부터 탈주하고 식민지화를 의식적으로 단절하기 위한 저항 기제이며 낯섦을 차용하여 서구 식민주의의 문화적 헤게모니와 담론에 도전하고 이를 탈중심화 시키고자 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재걸의 「최종태 조각에 담긴 ‘화해(和解)’의 미(美) - 백제 마애불의 미의식을 중심으로」는 화려함과 우월감을 배제하고 투박함과 수수함을 보여주는 최종태의 조각 작품을 분석한 글이다. 최종태에게 가톨릭과 불교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정신세계를 통합하는 화해의 도구는 백제 마애불의 아름다움 안에 있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기질과 인간과 자연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겸손한 마음임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최종태가 가장 익숙하고 평범한 것 안에 담겨 있는 특별함의 가치를 발굴하고, 전통미술의 기품과 현대미술의 유연함을 동시에 발휘하며 해학과 함께 한국의 항구적 정신성을 인류 보편에 근접시켰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지희 (한양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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