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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예술과미디어학회〉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예술과 미디어』는 그동안 한국연구재단(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의 등재학술지로서 전문성을 갖추고 차별화된 예술 담론의 장(場)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본 학술지는 특히 동시대 예술창작가들과 이론가들이 지적 교류를 통해 한데 모여 동시대 예술의 향방을 가늠하는 한편, 수준 높은 학술논문을 통해 한국 예술이론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미디어』는 더욱 권위 있는 예술전문학술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미술사와 미학의 최신 동향에 대한 탐구는 물론, 예술 창작의 생생한 현장성 전달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본 학술지는 역사, 사회, 정치, 첨단 과학 등의 분야에서 생산되는 여러 주목할 만한 현상들을 예술문화이론에 능동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오늘날 등재학술지에 요구되는 융합적 학술목표에 상응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2020년 상반기 학술지에 참여해 주신 연구자들은 참신한 발상과 성실한 연구 수행을 통해서 인용 가치가 높은 학술논문을 생산하였으며, 동시대의 문화적 지형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예술 담론의 실제적 적용 등의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생산한 6편의 논문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김연희, 김홍중의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과 지연된 사후 작용」 은 자크 데리다가 195년에 출간한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ion)』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연구자들은 아카이브가 어떠한 외부적 장소에서 아카이브를 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술하는 데리다의 이론을 분석하면서, 프로이트의 몇몇 텍스트를 근거로 지연된 사후 작용(defered action)이 작동하는 방식이 ‘꿈-무의식’에서처럼 아카이브의 전제 조건인 망각과 기억에도 소급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연희, 김홍중은 데리다가 아카이브의 내재적 구조는 라캉의 정신분석학 관점과 연결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동의하면서 아카이브적 충동이 “대체로 상징적인 질서를 방해하는 비뚤어진 계획”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아카이브 형성 구조 안에 숨겨진 창조적·주이상스적 특질을 집요하게 밝힙니다. 김현숙의 논문 「이응노, 이배, 마츠타니 타케사다의 작품에서 반복과 무념무상(無念無想)」은 파리에 기반을 둔 두 명의 한국 미술가인 이응노와 이배, 그리고 재불 일본 미술가인 마츠타니 타케사다의 예술세계를 분석합니다. 본 논문은 서예에서 발견한 추상성을 이용하여 본질로 환원된 인간상을 그린 이응노의 〈군상(Foule)〉 연작, 동양화에서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먹을 가는 행위나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하며 ‘시작-원형-본질’의 의미를 되묻는 마츠타니, 그리고 외형은 다 타고 남은 숯을 이용하여 사물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배의 설치 작품 〈산책(Promenade〉 등에 잠재된 동양철학적 무념무상(無念無想)이나 명상이 프랑스 문화와 이념과 만나 재발견되는 장면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역시 파리에서 강의와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현숙은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반복 행위’를 비평적 안목으로 분석하면서 동서양의 문화예술이 교류하는 현장을 미술사적으로 정립하고, 동양철학의 신비와 정수를 미학적으로 환기합니다. 한편, 봉준호 감독의 근작인 〈설국열차〉와 〈기생충〉을 프레드릭 제임슨의 세 가지 의미론적 지평 해석을 적용하여 논하는 이수정의 「〈설국열차〉와 〈기생충〉에 나타난 계급모순의 극복방식: 프레드릭 제임슨의 서사이론을 중심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갈등에 관한 정치적 이슈를 영화비평 영역 안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 논문은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문화의 전 영역에서 사물화도 함께 진행된다는 제임슨의 입장에서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삶과 가치가 서로 완전하게 분리되어 모순을 인식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봉준호 감독의 두 영화를 제재(題材)로 삼아 이론적으로 접근합니다. 여기서 연구자는 ‘사물화의 체계’를 자본주의의 특수한 논리로 설명함에 있어서 제임슨의 세 가지 지평의 의미론적 해석방식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영한은 「존 발데사리의 작품에 나타난 텍스트와 미디어 이미지 연구」 를 통해 개념미술가 존 발데사리가 텍스트, 사진과 디어 이미지 등을 차용하는 방식을 학술적으로 연역(演繹)하고, 현대적 신화로서의 미디어 본성에 관한 비평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익히 알려진바, 발데사리의 ‘사진-개념주의’ 방법론은 이른바 ‘픽쳐스 세대’로 잘 알려진 바바라 크루거나 데이비드 살르 등의 동시대 예술가들에게도 전파되는 등, 그 안에 담긴 도발과 유머는 당시 젊은 미술가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연구자는 이러한 발데사리의 예술을 고찰하면서 특히 롤랑 바르트의 저서 『신화론』(1957)의 텍스트를 캔버스로 옮기는 발데사리의 예술 행위에 주목하고 현대사회에서 ‘언어-기호’ 가 가진 가상적·신화적 함의를 추적합니다. 프랑스의 연구자 이자벨 샤리에는 「후카미(Fukami) 전시를 통한 프랑스에서 일본 예술의 새로운 인식: 일본 미학의 여백에 위치한 이우환」을 통해 ‘자포니즘(Japonisme)’의 미술사적 의미를 상기시키는 전시 〈Fukami: Une plongee dans l’esthetique japonaise〉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전개합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 하세가와 유코는 신석기 시대의 조몬(Jomon) 도자기에서 무용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문화 콘텐츠를 통해 전통문화와 현대 예술의 교차점을 드러내고 그 잠재적 가치를 모색하였습니다. 본 논문은 전시 〈Fukami〉의 국제적 성과를 고찰하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자 이자벨 샤리에는 일본의 선화(Zen painting) 섹션에 소개된 이우환의 설치작업 〈상응(Relatum)〉을 주요하게 다루면서 일본의 전위 예술운동이었던 ‘모노파(物派)’의 핵심 이념, 즉 주지주의(主知主義)에서 벗어난 ‘사물과의 현상학적 만남’ 을 현대적 입장에서 재발견하고, 나아가 한국, 일본, 프랑스를 넘나드는 현대예술의 초국적(超國籍) 가치를 재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적, 김형기의 「AI 기술을 이용한 관객 상호작용 노화현상 생성 미디어아트: 연구자의 미디어아트 작품 〈Chemistry〉를 중심으로」는 상호주관성의 철학적 사유를 경유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이에 형성되는 의식과 감정의 밀접한 관계성을 추적합니다. 연구자는 현재 인공지능은 그 놀라운 기술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심층적인 감정과 그 반향(反響)을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데, 예술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매개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흥미롭게 피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적, 김형기 기술적 진보의 시대에서 매체를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도구’로 예술 행위를 긍정하고, 인공지능(인간 지능의 사물화)이 가진 심리적 특성을 고찰하는 동시대 미디어아트 작품들과 자신의 작품 〈Chemistry〉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가하여 과학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대한 반성적·철학적 태도를 견지합니다. 이번 『예술과 미디어』 19권 제1호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의 압도적인 위협 속에서도 연구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한 국내외 저자들의 학술성과를 모아 출간하게 되어 더욱더 뜻깊다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상반기 학술지 발간에 참여해 주신 학회장 김범수 회장님 이하 〈예술과미디어학회〉의 연구자님들, 심사를 위해 귀한 시간 할애해 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늘 학회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편집위원장 정수경 교수님 이하 편집위원님들, 사무국장 이연숙 선생님 이하 간사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동안 바쁘고 고단하다고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나날들이 절실히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존경하는 학회 선배님들과 사랑하는 후배님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팬데믹 이후에 더욱 성숙한 연구자의 모습으로 만나 뵙기를 희망합니다. 이재걸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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