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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20년은 현장과 학계에서 예술과 미디어를 탐색, 고찰, 연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혹독한 단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클리셰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은 듯, 많은 연구자들이 코로나19의 상황이 초래한 변화의 역동 가운데 예술과 미디어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의미 있는 연구들을 내놓고 있다. 『예술과 미디어』 19권 2호에 투고된 논문들 중에는 코로나19가 부과한 ‘언택트’의 조건 속에서 미디어의 가능성을 다루는 논문들이 유독 많았다. 비록 많은 투고 논문들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으로 인해 다소 미진했지만, 몇 편의 연구논문들이 예술과 미디어에 대한 유의미한 전망을 제시하며 게재되었다. 또한 투고 논문들은 AI, VR에 대한 연구가 미디어와 예술에 관한 가장 첨단 연구주제임을 재확인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술과 미디어』는 특정 주제에 게재를 제한하지 않고 예술과 미디어에 관한 폭넓은 연구 성과들을 모두 품어내는 방향으로 심사와 편집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31편의 투고 논문 중 최종 12편의 논문이 게재되는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이번 호에는 예술과 미디어 학회의 가을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논문들도 여러 편 투고되어 학회가 운영하는 학술대회와 학술지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을 제고하는 발판이 마련된 점도 특기할만하다. 총 10편의 학술대회 발표 논문 중 5편의 논문이 심사를 거쳐 이번 호에 게재되었다. 강승한의 「언택트에 따른 대학의 비대면 학습을 위한 참여적 커뮤니케이션 방안 연구」는 마누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론을 적용하여 온라인 기반 혁신 교수법으로 유명한 ‘미네르바 스쿨’을 분석했으며, 이를 통해 변화된 사회적 조건 속에서 미디어가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연관 관계,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고찰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교육 환경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미디어 연구논문이라 평가된다. 김미진의 「공유와 고유감각의 확장에 대한 큐레이팅 고찰」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과 프랑스관이 작가와 큐레이터의 협업을 통해 예술에서 고유와 공유 사이의 관계항을 실험하면서 예술에 대한 감각을 확장시키는 양상을 세심하게 고찰하고 평가한 논문이다. 논문은 이 두 전시관이 보여주는 고유+공유, 새로운 매체와 장르 예술의 유연한 수용을 통한 지속적 확장이 부리요의 관계미학, 부르디외의 장이론에 영향을 받아 지난 이 십여 년간 지속되어 온 시대의 큐레이팅 경향이라고 진단한다. 김이순의 「역설과 저항의 미학」은 기성 조각을 거스르는 작업을 했던 이승택의 작품을 재료, 기법, 개념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논문은 바람과 불 등 이승택이 사용했던 비정형적 재료, 묶기라는 특별한 조형방법, 그리고 사물의 물성에 대한 반전을 보여주어 존재론적 믿음에 물음을 던지는 주제 등을 다룸으로써 그의 조각을 기성 조각의 개념을 해체하는 ‘비조각’으로 타당하게 규정하고 있다. 김전희, 김진엽의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창작」은 예술 창작의 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현황에 대해 살피고, 그 예술적 가능성을 들뢰즈의 예술론에 기대어 논하고 있는 논문이다. 한때는 예술의 영역이 인공지능의 침범으로부터 안전한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하였으나, 인공지능 화가의 작품이 미술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되면서 이 논문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뜨겁고 논쟁적인 것이 되었다. 이 논문은 그러한 논쟁을 위한 기초 담론을 제시하고 논쟁의 핵심 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인숙의 「조각의 확장과 비조각의 의미」는 미니멀리즘 조각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서 시작된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비조각 개념을 고찰함으로써 ‘부정성’을 비조각의 규정적 특질로 제시하는 연구논문이다. 논문은 이러한 비조각의 흐름이 초현실주의 조각에서 이미 시작되어 비디오아트의 출현에 의해 심화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비조각을 포스트모던 조각과 동일시하는 시각에 도전하는 연구사적 의미도 지닌다. 류범열, 양세혁의 「거울대칭 구조로 성격화된 현실과 반현실의 공간」은 2019년 영화 <조커>의 공간을 서사의 흐름과 캐릭터의 내적 갈등을 반영하는 중요한 창작 영역으로 간주하고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은 <조커>의 공간이 애니메이션만큼이나 치밀하게 통제되어 성격화되었다고 평가하면서 분석을 통해 그 통제된 양상을 거울대칭 구조로 결론짓고 있다. 현실과 반현실이 대칭을 이룰 만큼 균등하게 공간화되었다는 것은 인물 분석에도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며, 논문은 그 주제를 향후 연구주제로 남기고 있다. 리줘, 양성원의 「장족 전통의상을 활용한 21C 패션디자인 개발연구」는 1800년의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수공예적 특징을 지닌 장족 전통의상이 21세기 패션으로서 지닌 현실적 괴리감을 극복하고 현대적 패션디자인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하는 디자인 연구논문이다. 비단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민족 고유성을 현대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태도가 다문화주의를 넘어 ‘타문화주의’라는 개념을 낳고 있는 이 시기에 매우 시의적절한 연구논문이라 하겠다. 문소영의 「봉준호 영화 ‘기생충’과 ‘설국열차’의 상징적 공간을 통해 나타난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는 봉준호 영화 ‘기생충’과 ‘설국열차’에 묘사된 자본주의 체제를 벤야민의 저술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 기대어 분석한 연구논문으로, 두 영화를 리얼리즘적이라고 간주하기보다는 현실 속 자본주의의 종교화 징후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타당하게 평가한다. 이 논문은 이렇게 영화를 바라보는 기본 틀을 변경함으로써 감독이 영화에 싣고 있는 주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애의 「한국의 아웃사이더 미술가들」은 국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들을 한국 문화와 다른 문화의 연결접속을 가능하게 하여 한국문화의 경계 짓기를 수행하는 아웃사이더 미술가로 규정하고, 그 유형을 한국을 떠나게 된 양상에 따라 셋으로 구분하여 논의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들의 양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논문은 다양체로서의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 제안한다. 순지엔동, 김형기의 「역사문화재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디자인」은 전통적이고 직접 접촉하는 관람에 의한 역사문화재 전승 방식이 지닌 훼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디자인에 대한 연구논문이다. 논문은 최근의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단순한 보여주기를 넘어 인터렉티브 체험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보존과 복원에서도 탁월한 장점을 가졌음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미디어들과 결합된 크로스미디어 통합 디자인 모델도 제안하고 있다. 정수경의 「루이스 부르주아의 비조각 작업에서 자아정체성의 문제」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작업 양상을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로니 자노프-불먼의 ‘깨어진 가정들’ 이론과 주디스 버틀러의 ‘비/소유’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자 한 연구논문이다. 논문은 부르주아의 작품 전개 양상이 보여주는 비정합성과 파편성에 주목하고, 그것이 어떻게 그녀의 자아정체성 재수립과 유기적으로 연관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마망〉을 그러한 비정합성의 연속성에서 해석하였다. 조경진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미학적 적용」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비조각론을 라투르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그 한계를 논하고, 대안으로서 ‘번역으로서의 예술’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연구논문이다. 논문은 크라우스의 매체 개념이 우리 시대의 다양한 혼종적 네트워크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라투르의 이론을 통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넘어 탈인간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예술행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논문은 창작자가 누구이든 네트워크 상에서의 포스트프로덕션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는 이미지들의 순환구조에 관해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한다. 31편이라는 투고 논문 수와 그에 비례하는 다양한 연구 주제들은 『예술과 미디어』 가 얼마만큼 열린 학술지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주었다. 『예술과 미디어』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만큼이나 고유와 공유, 새로움에 대한 열린 감각을 유지하면서 중진과 신진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에 언제나 목마른 학술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 실린 논문들이 또 다른 목마른 후학들에게 해갈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정수경 (차의과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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